결혼하지 말걸 그랬어 (블랙노블3)

관리자 | 2018.07.18 16:47 | 공감 0




사전예고 없이 ‘암’이 찾아왔다. 
다정과 매정 사이를 오가는 가족, 한 방 먹이기로 작정했다. 이제부터 신사임당 놀이는 끝이다.
                    
“왜? 사랑이 아닌 혈연만으로 뭉친 가족은 너무 파란만장하잖아. 홈 메이드라고 다 좋은 건 아냐”

오 마이 갓! 8시간의 긴 암수술을 한 후 깨어난 순간 엄정화의 노래가 귓가를 스쳤다. ‘이제는 웃는 거야 스마일 어게인, 오 해피 데이…….’  
자궁, 난소, 림프까지 여성 삼종 세트를 다 날렸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의 노래를 들었다. 이제는 파이팅의 나날이 시작될 것이다. 

존재감 없는 소설가, 깜냥도 아닌데 수년간 신사임당 콤플렉스에 걸린 ‘나’. 집에서도 길을 잃은 것 같은 나날을 보내던 나는 갑자기 ‘암’ 선고를 받는다. 예고도 없이. 믿었던 인생에게 한방 먹었다.
모성애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친정엄마,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 회사에서 잘나가는 남편, 의대에 다니는 큰 딸과 공시족인 둘 째 딸, 공부보다는 소소한 연애에 더 관심이 많은 막내딸까지 다 안녕한데 나만 암이다. 모두 다 안녕하신데 나만 안녕하지 않아 그야말로 멘붕이다.
과연 나에게 인생 역전, 위대한 후반전이 펼쳐질 수 있기는 한 걸까? 제초제를 뿌린 것처럼 일시에 죽어버린 사랑은 다시 부활할 수 있을까? 불현듯 생각나는 남사친.......
매정한 듯, 다정한 듯, 가끔은 물리고 싶은 집단 혈연주의를 탈피하고 진정한 가족애를 찾을 수 있을까?  
바람에 흔들리는 아네모네처럼 흔들리는 ‘나’는 20세기에 시작되어 21세기까지 이어지는 지지부진한 사랑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인생은 모른다’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에 죽어라 의사공부 시켜놨더니 4살 연하의 인디밴드의 록커와 사귀는 딸에, 장남 콤플렉스를 가진 남편까지 고뇌의 인생 삼단 케이크위에 암 수술로 정점을 찍어버린 나. 주치의 말처럼 난소와 자궁을 제거해도 아쉬울 것도 손해날 것도 없는 나이 48살을 발로 차주고 싶다.

작가로서도 루저이고 주부로서도 루저 인‘나’는 드디어 나이 마흔 여덟이 됐다. 회사에서 잘 나가는 남편은 베스트 셀로 작가가 아니어도 폼 나게 글을 쓸 수 있는 이유가 고소득 남편을 둔 탓이라고 공공연히 말하며 나의 자존심을 긁는다. 본인이 그렇게 되기까지 가정경제를 위해 얼마나 내가 잡문을 썼는지를 망각하고 말이다.

얼마 전 출발은 같이 했으나 지금은 나보다 백배 쯤 잘 나가는 작가가 일본의 영화배우 오다기리 조와 인터뷰 한 기사를 봤다. 결혼도 안하고 정말 어느 개그맨의 말처럼 달인 정신으로 매진한 그녀와 일찌감치 결혼해서 애 셋을 낳고 돈 되는 글은 다 쓰면서 정작 쓰고 싶은 글은 삼년에 한번 낼까 말까로 산 나와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건 진즉에 인정 했지만 오다기리 조와 인터뷰 기사는 나를 절망의 방석 한가운데로 한방에 날려버렸다.

그러나 화려한 날이 영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약관 스물의 나이에  쌈빡한 연애소설 한편으로 작가로 등단한 나는 한 때는 한국의 <프랑소와즈 사강>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풍부한 감수성을 자랑했다. 하지만 나의 현재 주소는 그저 그런 작가. 출판만 하면 2쇄가 나오기도 전에 서점가에서 사라져서 남편은‘일땡’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더구나 본업인 소설보다 의뢰가 들어오는 청탁 원고와 프리랜서 카피라이터로 일하느라 한 달이 바쁜 생계형 작가이며 통장에 입금이 되는 즉시 원고가 이메일로 보내는 작가정신이 부족한 작가다. 그런 나를 알아주는 사람은 오랫동안 같이 망하고 같이 흥해온 출판사 허 편집장뿐이다.
동료 작가가 작품으로 승부할 때 ‘나’는 애 낳는 것으로 승부를 할 사람처럼 줄줄이‘인간작품’인 딸 셋을 낳았다. 덕분에 수산시장에서 젓갈장사로 돈을 번 시어머니의 대부분의 재산은 시어머니의 말처럼 ‘일점혈육’ 아들을 낳아준 시동생에게로 넘어갔다. 다행이 치매 초기인 시어머니는‘글이나 씁네 하며 담배나 피우고, 딸만 싸지른다’며 도통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큰며느리 대신 작은 며느리와 살고 있다.  

시어머니가 어느 날 학교를 가는 ‘나’에게 대학은 집어치우고 젓갈가게에 나와서 일이나 도우라고 했을 때 첫 번째 인생 실망을 맛본다. 막 등단한 작가를 젓갈집 새댁으로 변신시키려는 시어머니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치가 떨었다.  친정 엄마는 어떻게든 일찍 결혼한 딸 대학은 졸업시키려고 절반의 등록금을 대주고 외손녀까지 맡아서 길러주는데 시어머니는 법대생 아들 뒷바라지나 하며 젓갈이나 팔라는 말은 ‘나’에게 죽으라는 말이었다. 나는 그날 눈물을 쏟으며 학교에 갔다. 기말고사는 다 망치고, 영문도 모른 채 옆에 앉은, 초중고 에 이어 대학까지 동창인친 구 윤제는 티슈 뽑아주기 바빴다. 그날 ‘나’는 윤제랑 결혼안 한 것을 후회하며 펑펑 울었다. 돈이 인생을 편하게 해주지 사랑이 인생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 일찍 알아버렸던 것이다. 

‘가족설명서가 필요해’

사십이 넘어서부터 ‘나’는 모든 사물과 대화를 하는 버릇이 생겼다. 심지어 생선의 머리를 자르고 토막을 치면서도 말한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내 본의는 아니다. 다음엔 생선으로 태어나지 말고 생선가게 주인으로 태어나라.’ 세탁기와 냉장고에게도 말한다. ‘ 너무 부려먹어서 미안해’ 라고. ‘너는 예뻐서 좋겠다. 하지만 잊지 마. 화무십일홍’이라고 꽃에게도 말을 걸고, ‘너는 남의 옷만 걸치고 있어서 어쩌니’ 라며 옷걸이에게도 말을 건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하루 종일 입도 뻥끗 못하니 말이다.  그야말로 인생 후반기에 묵언수행의 나날이다.
그런 나에게 갑작스런 암 선고와 시어머니의 치매로도 모자라 수련의 과정을 하고 있는 큰 딸 가을은 날라리 뽕짝 록 가수와 결혼을 전제로 사귄다. 그야말로 ‘나’의 인생에 쓰나미가 덮친 셈이다. 드디어 그 어느 때 보다도 인생의 매뉴얼, 가족관계설명서가 필요한 시점이 된 것이다.
 
‘나’는 친구 진애의 ‘너도 해본 사랑을 왜 못하게 하니?’ 라는 말 때문에 당분간은 지켜보려 하지만 사랑의 아우토반을 달리는 그들에게 충돌사고가 나기를 간절히 바라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 안 풀려서 우울하고, 태생이 육식주의자인 ‘나’에게 동생이 추천하는 암 재발을 방지하는 체질개선 식단도 우울하고, 치매 걸리신 시어머니도 우울하게 하고, 온 세상이 도무지 협조라는 것을 해주지 않지만 그래도 일말의 희망은 있다.  그것은 바로 ‘죽기 전에 연애 소설’이다.   
 
그러나 소설도 쉽지는 않다. 굿 발이 다 된 무당처럼 계속 헛지랄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루에도 열 두 번은 후회한다. 연애소설을 쓰기에는 너무나도 척박한 환경을 탓해야할지 아니면 급습한 암을 탓해야 할지, 그도 아니면 이미 증발해서 연애화학작용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는 감성을 탓해야 할지‘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한마디로 요약하지면 돌밭을 갈고 있는 화전민의 심정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인생을 합리적으로 살고 싶다. 누가 무어라고 하던 간에 말이다. 언제부터 감수성에 사는 여주인공 같던 ‘나’가 합리를 부르짖고 살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젓갈장사로 소규모의 부를 이룬 시어머니와 함께 살면서부터다. 나의 감수성은 젓갈냄새에 버무려지고, 현실에 버무려지고, 나중엔 로맨틱이 젓갈과 삼투압현상을 일으키면서 그나마 있던 것도 고갈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초콜릿과 사탕을 한 움큼 움켜쥐고 정성스럽게 내린 에스프레소 한잔을 든 채 주방 옆 작업실에서 소설을 쓴다. 사는 이유의 99%이니까.
노트북을 켜고 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고른다. 클래식으로 할지 아니면 올드팝으로 할지 그도 아니면 한석규와 이제훈이  파바로티의 영화 주제가 ‘행복을 주는 사람’을 들으며 시작할 지를 고민을 한다. 글발이 머리부터 가슴으로 내려올 때까지 사탕과 초콜릿을 번갈아 먹는다. 에스프레소와 입안에서 뒤섞여지는 맛이 일품이듯 ‘나’의 상상력이 아름다운 화학반응 하기를 가대한다.  그 순간에 ‘나’는 국가가 관리하는 암환자라는 사실을 잊는다.
가끔은 예감이 좋다. 접신의 지경은 아니지만 나의 안테나가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달아나버린 로맨틱을 잡아낼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방해만 받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나 겨우 로맨틱과 내안의 서정성이 부활하려는 즈음  갑자기 늦둥이를 임신한 동서가 유산을 하는 바람에 남편이 시어머니를 모시고 오는 사고를 친다. 시어머니의 모든 재산을 접수하는 조건으로 시어머니를 모시기로 했던 시동생내외가 동서의 스트레스성 유산으로 인해 당분간 시어머니를 모실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덕분에 조금 잡히던 낭만이 다시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린다.
‘나’남편은 효심에 가득차서 파리를 잡아먹은 두꺼비 얼굴이다. 물론 그 파리가 ‘나’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도 없다. 그러나 ‘나’에게 그런 남편의 효자코스프레를 비난하며 싸울 힘도 없다. 
과거를 잊고 오직 현재만을 기억하는 시어머니는 내 집 소파에 앉아서 늘 거기에 있던 사람처럼‘나’에게 말한다.
“내일 마당의 풀 좀 뽑아라.”
이쯤 되면 중년 신데렐라 버전이다. 고대하던 아들을 낳는 동시에 진정성 있는 효도를 한 동서는 친 딸 버전이고. 젊고 미모인 신데렐라는 자정에 왕자라도 만나지만 중년의 신데렐라는 군불이나 때며 새벽을 기다려야하는 신세다.

‘나’에게 인생이란 놈은 참 요물이다. 어떻게 각본을 만들어도 이렇게 만들 수 있는 걸까? 순간 인생이란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서 이미 만들어지고 그저 역할 놀이에 참여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성실히 임해야 되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세상의 어떤 감독이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이른 아침에  찻집, 마른 꽃 떨린 창가에 앉아 외로움을 마셔요. 아름다운 죄 사랑 때문에 홀로 지샌 긴 밤이여 뜨거운 이름 가슴에 두면 왜 한숨이 나는 걸까. 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대 나의 사랑아.’
시어머니는 정확히 가사를 다 외우고 있었다. 십 분전의 일도 잊는 분이신데 어떻게 조용필의<그 겨울의 찻집>을 글자 하나 안 틀리고 다 기억하는 것일까?
그런데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사람은 정작 ‘나’다. 

큰 딸 가을의 연애는 아직은 봄날이다. 그 바쁜 와중에도 날라리 뽕짝과 데이트를 하는 걸 보면. 남편은 그런 가을의 연애를 알지 못한다. 알게 되는 날이 남편이 쓰러지는 날이다. 의심이 많은 남편은 치매노인 전문 간병인을 고용하고 그것도 모자라 치매인 어머니 때문에 집안에 CCTV까지 달았다. 그리곤 회사에서 실시간으로 시어머니의 하루를 본다. 조지오웰에나 나올 법한 스토리가 집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서도 혹시 어딘가 CCTV가 설치된 건 아닌지 두리번거리기까지 한다. 어느 여자 개그맨의 말처럼 ‘대단한 효자 나셨다’ 이다.
 
그런 ‘나’ 에게 반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오랫동안 함께 해온 허 편집장이 찾아오더니 늘 들고 다니는 일명‘일수가방’을 뒤지더니 티켓을 불쑥 내민다. 항공기 티켓이었다.  그것도 두 장. 타오르미나 행 티켓이다.
“이건 왜?”
‘나’는 놀라서 묻는다.
“엄마는 딸 연애스토리를 팔아먹는데, 뭐라도 해야지. 그동안 내가 세계일주 할 때 쓰려고 안 쓰고 모아둔 마일리지 다 털었다. 가고 싶은데 가서 쓰고 오라고. 치매시어머니 곁에서 머리 쥐나지 말고. 당신 남편이 나 죽이려고 하겠지만 우리는 또 글을 쓰고 출판할 의무가 있잖아. 노르웨이이든 어디든 다 가능해. 이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 숲> 보고 가고 싶어 했잖아. 아니며 그 타오르미나를 가던지. 어디든 가능해.” 

‘다정은 병, 애정은 죄?’

‘나’는 공항버스 창밖으로 스쳐지나가는 한강을 보며 이제부터는 완벽하게 사랑하고 생각하고 쓰는 나날로 만들겠다고 다짐한다. 공항으로 달리는 버스 안에서 가을, 겨울, 봄 세 딸들과 남편에게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는 ‘나.
“각자들 알아서 잘하길 바란다. 서로의 인생에 간섭하지 않기. 딸들, 열심히 살아주길 바래. 앞으로  너희들은 완벽하게 자유다.”
“당신의 가족주의와 혈연정신에 무한 존경을 표하지만 동의는 하지 않아. 사랑이 아닌 혈연만으로 뭉친 가족은 너무 파란만장하잖아. 홈 메이드라고 다 좋은 건 아냐. 돌아와서 이야기 해.”
돌아오는 날은 언제인지 모른다. 다만 길지 않을 거라는 문자 달랑 날리고 떠난 ‘나’에게 그야말로 인생은 Quizas! Quizas! Quizas! 이니까 말이다.

과연 에게해의 바람이 불어오는 타오르미나의 언덕에서 나는 사랑을 발견하게 될까? 아니면 영화 <화양연화> 속에서 양조위가 그랬듯이 소중한 무언가를 시간의 틈 속에 봉인한 채 돌아 설까? 

오픈 티켓을 들고 떠나는 여행의 끝에서 ‘나’ 는 무엇을 만나게 될까? ‘다정과 매정’사이를 오가는 가족에게로 돌아올까? 아니면 다시 로맨틱을 찾을까?

유춘강의 <결혼하지 말걸 그랬어>가 곧 전자책 출간됩니다.
교보문고, 리디북스, 예스24, 알라딘, 네이버북, 원스토어 전자책 코너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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